소통

요즘을 살아가는 인생들 간에 새로운 화두가 소통이다. 바람이 통한다든가 숨이 통한다든가 마음이 통한다든가 이치가 통한다든가 영이 통한다든가 이렇게 무엇이든지 소통하면 살지만, 기가 막힌다든가 바람이 막힌다든가 숨이 막힌다든가 이치가 막힌다든가 속이 막힌다든가 길이 막힌다든가 무엇이든지 불통하면 인생은 죽는다. 인생은 무엇과 든 소통해야 한다. 소통한다는 것은 사귄다는 것이요, 사귄다는 것은 친해진다는 것이요, 친해진다는 것은 친구가 된다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와 통하면 그것이 바로 친구다. 언젠가 “친구”라고 하는 영화가 신드롬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이는 분명 모든 사람이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친구”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증거일 게다. 서로 믿고 의지하며, 서로 울고 웃으며 소통할 수 있는 친구 말이다.

주님은 우리와의 관계를 다양하게 표현하고 계시다. 그 표현을 보면 조물주와 피조물 관계, 주종 관계, 스승과 제자 관계, 부자 관계, 부부 관계, 목자와 양 관계다. 그러나 이 무슨 관계 보다 더 귀하고 가까운 관계의 표현이 있으니 친구 관계다. 이는 주님이 우리와 소통하신다는 말이요, 이것이 바로 주님으로부터 받은 가장 큰사랑이요 은혜다.

친구하고는 못하는 말이 없다. 그래서 사제지간에도, 부자지간에도, 부부지간에도 한계가 있는 대화를 친구하고는 날밤을 샌다. 친구와는 가릴 것이 없다. 그래서 친구는 좋다. 주님도 아브라함을 친구로 여기시니 “나의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창18:17)라고 하셨고, 모세를 친구로 여기시니 대면하여 말씀하셨고(출33:11), 다윗을 친구로 여기시니 “내 마음에 합한 자”(행13:22)라 하셨다. 우리의 구주요(Savior), 주님이신(Lord) 예수와도 친구를 할 수 있다면 어느 누구와 친구를 못하겠는가? 도대체 누가, 무엇이 우리들의 사이를 친구의 관계가 못되게 하는가?

사랑하는 성도여!

당신들에게는 진정 친구가 있는가? 만리 길 떠나면서 처자식을 맡겨놓고 갈 그 친구를 진정 가졌는가? 만약 없다면 우리 함께 친구가 되어 보자. 아니 예수의 피 값으로 맺어주신 성도들의 관계에서도 그런 친구를 못 맺는 자들이 어찌 창조주이신 예수와 친구를 이룰 수 있는가? 이는 외식이요, 거짓이다.

친구는 서로 수준이 맞아야 한다. 그리고 의리가 있어야 하며 끝까지 변치 말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의 영원한 친구 예수도 우리와 수준을 맞추시기 위해 낮고 낮은 이 땅까지 오셨고, 죽기까지 의리를 지키셨고, 영원히 변치 않으신다.

나는 친구가 좋다.